한치이야기 5 – 육대골의 환상

“한 줄기 바람이 부는 아침
동그란 얼굴이 가슴에 닿는다.
싱그런 미소 별 같은 눈빛
눈앞에 보인다.

얼굴을 붉히며 뛰어온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모두 사라진다. 사라져 간다.
아침 하늘엔 흰 구름만
흘러서 간다. 흘러서 간다.”

– 1978년 발매된 윤세원의 가요 ‘환상’ 가사 中

한치 마을 초입의 왼쪽으로 ‘육대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나는 육대골 입구를 지날 때면 늘 이 환상이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예전에 조씨 성을 가진 분이 육대골 괴머리(고양이 머리) 산의 기슭에서 염소목장을 하며 몇 해를 산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내가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갈 무렵부터 염소 목장집이 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염소목장 덕에 염소젖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그 댁의 큰딸이 1년 후배였습니다. 6학년 어느 봄 햇볕 좋은 날 육대골 입구를 지나다가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육대골 논둑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만 가슴이 마구 설렜습니다. 그 댁의 큰딸이었습니다. 용감하게 말을 붙여보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도 꼴을 베러 가거나 소나 염소에게 풀을 뜯기러 갈 일이 있으면 육대골 주위로 가서 어슬렁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등하굣길에서 그 애와 동행할 일이 있거나 마주치게 되면 의도적으로 쌀쌀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촌스럽고 어렸지만 나름의 애정 표현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얼마 후 염소 목장집에 텔레비전이 생겼습니다. 텔레비전을 마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날 풋내기 연정에 비길 바가 없는 중대 사건이고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던 지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텔레비전을 보러 그 댁에 들락거리곤 하였습니다. 염소 목장집에 놀러 가는 일은 텔레비전도 보고 그 애와 같은 공간에도 있게 되어 퍽이나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 무렵 가수 윤세원의 노래 ‘환상’이 상당한 인기가 있어서 텔레비전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댁 식구들은 텔레비전에서 환상 노래가 나오면 모두들 환호하며 좋아했습니다. 환상의 작사가인지 작곡가인지가 그 댁의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덩달아 나도 그 노래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겨울방학 때였던가 텔레비전을 보러 그 댁에 갔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댁 식구들과 함께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소변이 마려워서 요강에 오줌을 누게 되었습니다. 보통 다른 집들은 마루에 요강을 놓아두는데 그 댁에는 마루가 없어서였는지 방 윗목에 요강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잠결에 요강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해 소변이 주변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보통 큰일이 아니므로 불을 켜고 수습해야 했건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불을 켜서 혹시라도 누가 깨면, 특히 그 애라도 깨게 되면 다 떨어진 내복을 기워 입고 있는 모습을 들킬까 싶어 불도 켜지 못하고 무릎걸음을 걸으며 입고 있던 내복으로 주변에 흐른 소변을 모두 닦았습니다.

이미 잠은 달아나 버렸지만 염소 목장집과 우리 집의 거리가 가깝지가 않고 산길을 타고 가야 하는데 춥고 캄캄한 새벽에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소변에 젖은 내의를 감추려고 얼른 바지를 입은 채 방문 가까이 앉아 있다가 새벽빛이 밝아오자 집으로 냅다 도망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 댁 식구들이, 특히 그 애가 내가 소변 흘렸던 것을 혹시 알았을까요? 어쨌거나 몰랐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학 시절에도 방학이나 토요일이면 텔레비전을 보려고 그 집에 더 들르곤 했는데 얼마 후 그 집이 염소목장을 정리하고 조양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차츰 첫 연정(戀情)의 기억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아직도 육대골 입구를 지날라치면 문득 환상이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합니다. 남자 음역에서는 굉장히 소화하기 어려운 곡이지만 홀로 노래방에 들러 환상을 한번 불러볼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