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이야기 19 – 자장면이 싫어지다니
얼마 전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중화요리집에 예약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소싯적에는 ‘중국집’, ‘중화요리집’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고 입에 침부터 고였는데 지금은 ‘에이… 하필 중국집?’ 속으로 이 생각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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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중화요리집에 예약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소싯적에는 ‘중국집’, ‘중화요리집’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고 입에 침부터 고였는데 지금은 ‘에이… 하필 중국집?’ 속으로 이 생각부터
미래에 생길 일을 미리 꿈에서 알게 되는 것을 예지몽이라고 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를 위시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 능력자’들이 많습니다. 그중 미국의 영 능력자 ‘에드거 케이시’라는 사람이 예지몽으로 인류의 미래와
1990년대 중반 무렵 정신과 의사 김영우 박사가 <전생여행>이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정신과 병원 운영 중 여러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병이 잘 낫지 않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최면요법을 시도해
청소년기까지 과자나 빵을 그렇게나 좋아했건만 마음껏 사 먹을 여유가 없었는데, 정작 과자나 빵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게 되니 이제 과자나 빵이 잘 당기지 않습니다. 인생의 아이러니인데 이 또한 나이 들어가는 신호일
일정한 기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표현하니,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엿장수는 제 맘대로였을까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
현대문명이 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전기 없이 존속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한치 같은 산골 마을조차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4학년 때인 1976년 가을, 비로소 한치에도 전기가 들어왔는데 이후 생활의
‘스루메’가 ‘말린 오징어’의 일본말이라는 사실은 한참 더 커서야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처음 맛본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 과자류나 빵, 엿 등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지만 첫맛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지금은 한치까지 군내버스가 들어옵니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한치에 군내버스가 들어온다는 것은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 장면입니다. 몇 년 전 한치에 학생이 한 명 있을 때는 통학버스도 들어왔습니다. 한치의 토박이 학생은
지금 한치의 개울을 관찰하면 중택이(중태기)라고 부르는 버들치와 다슬기밖에 안 보입니다. 어렸을 때는 미꾸라지와 가재도 참 많았었는데 미꾸라지와 가재는 농약에 약한 탓에 1970년대 중후반 이후 농약을 마구잡이로 살
한치의 어른들은 영암장에 다녔던 일들을 유독 많이 말하셨습니다. 유치장이나 장흥장도 물론 이용했겠지만 영암장은 순전히 산을 몇 고개 넘어서 걸음만으로 나다녔던 장이기에 더 고생스러워서 늦게까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우리나라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우리 민족이 산을 좋아하고 숭상한다는 사실은 각종 학교의 교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사봉의 힘찬 정기 우러러 받아…” 유치서교 교가의 시작
여름에는 어디를 보나 무더위 속에서도 녹음이 우거져 있습니다. 자연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이 시기는 청년에서 장년으로 나아가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철의 가로수, 공원이나 공공기관, 학교의 조경수 중 느티나무에는
오래된 집을 보면 ‘저 집에는 참 많은 역사가 깃들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양마을만 해도 연조가 있어 보이는 멋들어진 기와집 두 채가 있고, 유치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할 때 마을을 다니다 보면 수몰되
황당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을 흔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합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어디서 유래했나 하고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대략 세 가지 견해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
“한 줄기 바람이 부는 아침동그란 얼굴이 가슴에 닿는다.싱그런 미소 별 같은 눈빛눈앞에 보인다. 얼굴을 붉히며 뛰어온다.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모두 사라진다. 사라져 간다.아침 하늘엔 흰 구름만흘러서 간다. 흘러서
누가 한치의 옛 삶을 특징짓는 단어 두어 개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단연 ‘다랑이논’과 ‘지게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좁은 골짝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개울가에 논을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공간에는 계단식의 다랑
한치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토박이 세 집. 그 아짐들 세 분은 참으로 징글징글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산골 마을의 삶이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피눈물 나는 세월이었겠지만 한치의 삶 또한 결코 만만치는 않았습니
재너메에는 ‘진뱅이’라고 불렸던 동냥치가 두 명 있었습니다. ‘진뱅이’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니 다리를 저는 사람, 즉 ‘절름발이’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습
한치(寒峙), 찬 바람이 부는 고개라는 뜻일까요? 나는 어렸을 때 이 이름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고, 실제로 동무들이나 아랫마을 어른들이